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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재를 안전하게 보존하고 균일하게 유지하려는 기술적 시 도는 약재의 활용역사 못지않게 오래되었는데, 전통적인 약재 가공 기술인 포제() 기술은 이미 중국 한대(漢代) 이전에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에 이 기술 들이 도입되기 시작 한 것으로 추정된다(Chang Ho Park & Shin In Kang, 2002). 한약재의 종류가 최대로 늘어난 시기는 조선시대인데, 당시는 현재보다 약 세배나 많은 1400여종이 사용되었다(Seong Jo Kim et al., 2001). 당시 발간된 동의보 감 등의 의서에는 약재별로 찌고 데치고 건조하거나 훈증하는 포제기술들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전통적인 의미에 서의 한방원료 표준화는 이미 이시기에 어느 정도 완성되었 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약재들은 가정이나 한의 원 등에서 질병 치료 등을 위한 목적으로 주로 소비되었고 최소한 수백 년 이상 근본적인 변화 없이 오늘날까지 이어 져 왔다.
현대에 와서는 한약재의 기원, 성상, 약리성분 등에 관한 기 술이 담긴 각국의 공정서가 발간되어 과학적으로 계량화 하려 는 시도들이 상당한 진전을 보였다. 2006년부터는 국내 약용 작물 생산과정에 GAP(Good Agricultural Practices) 인증제도 가 도입되었고 2015년에는 국내 한약재 제조과정에 hGMP (herbal Good Manufacturing Practice) 인증을 의무화하여 식 품 및 의약품의 표준화된 원료 생산이 한층 강화 되었다(Jin Han Park, 2008; The Yakup, 2015). 이와 더불어 약용작물 이 주로 한약원료로 이용되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건강기능 성 식품, 천연물 의약품, 한방 화장품 등 다양한 산업 소재로 의 활용이 늘어나게 되면서 원재료의 기원이나 위생, 안전성 등에 관한 소비자들의 요구수준도 높아지고 있다.
한방산업의 성장은 약용작물의 수요량 증가와 용도확대를 가져 왔지만 품질관리는 점점 더 까다로워지고 있고 국내기업 들도 원료를 더 안정적으로 조달하기 위해 해외 의존도를 높 이고 있어 생산농가의 부담은 오히려 가중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가운데, 최근 중국은 국제표준화기구(ISO, International Organization for Standardization)에서 한약재 국제표준화를 본 격적으로 추진하고 있어 국내 약용작물 생산 농가 및 관련 산 업계는 국제표준까지 신경 써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중 국은 아시아 최대 규모의 약재 소비시장과 생산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한동안 국제시장에서 중금속, 표백제, 곰팡이 독소, 발암물질 등 인체 유해물질과 관련된 논란이 지속되어 값싼 원재료 이상의 평가를 받지 못한 바 있는데, 이러한 점들은 중국 스스로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어 중국의 관련 업계 및 정 부에서는 약용작물 생산 및 제조부분의 인프라 개선과 원료 표준화를 위해 꾸준한 투자를 진행해 왔다.(KIEP, 2013) 현재 추진되고 있는 국제표준화도 갑작스러운 일이라기보다는 오랜 관련 정책 추진의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RDA, 2016) 중 국의 한약재 국제표준화는 약리적인 안전성과 안정성이 보장 된 원료공급을 위해 현대화된 생산체계를 구축하고 제품을 규 격화하려는 목적도 있지만, 동시에 국제교역에 있어서 시장우 위를 점하려는 목적도 포함된다. 중국은 국제표준화기구 전통 의학 기술위원회(ISO/TC249)의 간사국으로서 약용작물 분야 의 국제표준 선점을 위해 최근 들어 다양한 한약재 품목의 등 재를 시도하고 있고 일부품목은 등재가 완료된 상황이다. 이 러한 추세라면 우리나라 시장에서 거래되고 있는 주요 상위 품목들은 5년 내에 대부분 등재가 완료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 히 중국산의 약점으로 지목되었던 위생과 안전성에 대한 개선 은 물론 성분, 성상 등 식물체 유래 특성에 대한 기준도 중국 산을 중심으로 재편성될 가능성이 있다. 그 결과 중국산 약재 는 재평가를 통해 시장 점유율이 확대되고, 최종적으로는 원 재료를 생산하는 국내 약용작물 농가의 피해로 이어질 수 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의 한약재 ISO 국제표준 대응은 이들 생산 주체와의 교감이 거의 없이 그리고 향후 국제표준 화에 따른 관련 산업영향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이 선행되지 않은 채 대응 문건 수에만 집착하여 진행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최신 현황과 관련해 외부로 발표된 논문이나 보고서도 거의 없어 국내 생산자들의 의견을 국제표준에 반영하거나 공 론의 장을 형성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따라 본고에서는 한약재 국제표준화에 대한 약용작물 산업 관련자들의 이해를 돕고 향후 산·학·연간의 정보공유 및 협력 대응을 촉진하기 위하여 현재 중국을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는 한약재 ISO 국제표준화 현황을 소개하고 주요 분야별 대 응방안을 살펴보고자 한다.
연구의 범위
본 연구를 위해 국내 한약재 국제표준 대응 협의체인 ‘ISO TC249 전문위원회’의 회의 자료를 주로 참고하였으며 그 외 국내외 관련문헌 및 통계자료들을 이용하였다. 또한 현재 진 행되고 있는 국제표준화기구 전통의학 기술위원회(ISO TC249) 에서는 각 소분과(WG, Working group)별로 약용작물의 생산 (WG1), 한약재 품질(WG2), 침(WG3), 의료기기(WG4), 용어 (WG5) 등 한방 원재료 및 의료산업 전 분야의 표준화에 대해 다루고 있으나 본고에서는 약용작물 생산 및 한약재 품질부문 을 다루는 WG1과 WG2의 안건 주제를 주요 검토 대상으로 하였으며 논의 범위도 이에 제한한다.
주요 용어의 정의 및 사용
본고에서는 국제표준화기구 전통의학 기술위원회(ISO TC249)에서 ‘한약재 품질’과 관련해 ‘약용작물 생산’분야를 주 요 표준화 대상으로 포함하고 있으므로 ‘약용작물’과 ‘한약재’ 두 용어를 혼용하여 사용하였다. 한약재는 법적인 의미에서 ‘한약 또는 한약제제를 제조하기 위하여 사용되는 원료약재’ (Jeong Du-Chae et al., 2000)를 지칭하나 실제 유통시장에서 는 ‘농산물 또는 식품으로 유통되는 식약공용 한약재’도 포함 하여 지칭한다. 약용작물은 이보다 포괄적으로 ‘식품 및 의약 품으로 이용되는 농작물 또는 그 생산물’을 지칭하는 것이 일 반적이다. 생산단계 측면에서 보자면 약용작물을 가공한 것이 한약재이므로 약용작물은 한약재의 원료에 해당되나 내용상으 로는 같은 물질이다. 이에 따라 국내 여러 문헌 및 통계자료 에서도 약용작물을 한약재와 혼용하거나 병기1)하여 사용 (KIOM, 2014 ; Seong Jo Kim et al., 2001)하고 있다. 본 고에서도 편의상 ‘약용작물’을 ‘한약재’와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하였으며 맥락상 그 의미가 생산측면에 가깝거나 의약품 원재료와 식품 원재료를 모두 포함하는 포괄적인 의미라면 ‘약용작물’로, 의약품 원재료에 가깝거나 기존 관련 문서에서 이미 ‘한약재’로 사용한 경우 ‘한약재’로 언급하였다.
한약재 생산 및 품질 부문의 ISO 국제표준화 진행현황 ISO/TC249의 개요 및 최근 현황
2009년 ISO에서는 전통의학의 국제표준화에 대한 필요성에 따라 TC249(전통의학 기술위원회)가 설립되었다(Jinseok Moon, 2013). 위원회의 의장은 호주에서 맡고 있지만 실제로 는 간사국인 중국이 주도하고 있다. 국제규격 안에 대한 투표 의무가 있는 참가국가(P멤버, Participating Countries)는 일본, 한국, 독일, 인도 등 20개국이며 투표의무가 없는 참관국가(O 멤버, Observation Countries)는 영국, 스위스, 이탈리아 등 11 개국이다. 그러나 참관국가도 투표 의무는 없지만 회의 출석 권리는 가지며 의견을 제출할 수는 있다.(Ok Sun Bang et al., 2011; Woong Yong Lee, 2012) 각 국의 참가자들은 JWG(Joint Working Group)와 5개의 WG(Working Group) 등 7개 분야의 분과에서 활동한다.(Table 1) 총회는 보통 해마 다 열리는데, 2018년 상해에서 열린 9차 총회까지 진행되었다.2)
약용작물 생산이나 한약재 제조와 관련된 표준화 작업은 주 로 WG1과 WG2에서 진행하고 있고 그 외 그룹에서는 침이 나 의료기기, 안전성 등에 관한 내용들을 주로 다룬다.
각각의 총회에서는 단계별로 안건을 제안하고 활발한 토론 과정을 거쳐서 제안된 내용을 조율한다. 중요사안의 경우 현 장 투표를 통해 결정하기도 한다. 이후 온라인을 통해서도 제안 문건이 참가국들에게 보내지고 질의와 답변, 투표 등 이 진행되어 문건의 가부를 결정 한다. 8차 총회 때까지 발 의된 안건 중 한약재 생산 및 품질표준화를 다루는 WG1, WG2에서 진행 및 완료된 안건은 총 53건 이었는데 이중 한국과 중국, 일본이 99%를 차지하여 한약재 표준화를 두 고 실제로 경쟁하는 국가는 3개 국가라고 할 수 있다. 또한 3개국 중에서는 중국이 안건의 대부분을 제안하여 한약재 국제표준화를 주도하고 있다(Jinseok Moon, 2013). 제안된 문건을 발의한 국가가 자신들의 의도대로 처리하려면 투표 권을 가진 20개 참가 국가들의 동의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 이에 따라 회의기간 뿐만 아니라 회의 전 각 국가 간 물밑 접촉 및 설득작업이 치열하다. 대체적으로 제안된 안건에 대 해 참가국들은 한약재 국제표준화를 주도하고 있는 중국에 우호적인 편이고, 중국과 경쟁관계에 있는 한국과 일본은 이 런 면에서 다소 열세에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중국과 한국· 일본이 몇 년 동안 강하게 대립해 왔던 ISO/TC249 명칭을 결정하는 문제였는데, 6차 총회 때 결선투표에서 중국이 제 안한 “Traditional Chinese Medicine”이 8표를 얻고 일본 과 우리나라가 공동으로 제안한 “Traditional Medicine: Chinese Medicine, Kampo and Korean Medicine”이 3표 를 얻어 중국 측 안이 가결 된 바 있다.(KIOM, 2015) 다 른 안건들에 대해서도 중국과 한국·일본은 유사한 대립구도 를 형성하였으나 최근 WG1과 WG2에서 진행하고 있는 한 약재 생산 및 품질분야에서는 대립보다는 상호 협력을 통해 서 조율하기 위하여 일부 안건의 경우 한·중 양국이 공동연 구 및 공동제정 등을 추진하고 있다.
ISO 한약재 국제표준화 진행절차
ISO 표준화는 Fig 1과 같이 7단계로 진행된다. ①예비단계 에서는 예비업무 항목(PWI)을 작성한다. 그 다음 ②신규항목 제안안(NP)이 관련 기술위원회(TC)에 제안되고 승인되면 ③ 각각의 Working Group에서 작업초안(WD)에 대한 논의를 시 작한다. ④첫 번째 작업초안(WD)이 기술위원회에 배포되고 합 의에 도달하면 ⑤위원회 초안(CD)이 논평을 요청하는 모든 ISO 국가 구성원들과 공유한다. 다시 합의에 도달하게 되면 ⑥최종 국제표준 초안(FDIS)이 모든 ISO 구성원들에게 보내 진다. 이 표준안이 구성원들의 투표에 의해 승인되면 ⑦ISO 국제표준으로 확정된다. 각각의 단계는 목표기한이 정해져 있 어서 준비단계에서부터 최종 확정단계까지의 기간은 보통 3년 이상이 걸린다. 각각의 단계는 오프라인 총회에서의 발표와 토 론 그리고 온라인을 통해 진행되며, 발의국의 사정 등에 따라 지연될 수 있다. 또한 참가국들의 동의를 얻지 못하여 제안된 안건이 부결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2012년 한국(농촌진흥청) 에서 제안한 ‘참당귀’ 안건은 참가국들 설득에 실패하여 NP단 계에서 거절된 바 있다. 이 때 주요 부결사유는 개별 한약재 등재에 대한 일본 측의 반대 때문이었는데, 개별 한약재를 모 두 표준화 할 경우 이론상 수천 건의 표준을 등재해야 할 수 있어 대응부담이 생기므로 일본은 안건 상정 자체를 꺼렸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개별 한약재라 하더라도 국제적인 교역량 이나 생산비중이 클 경우 국제표준화가 필요하다는 방향으로 선회하여 현재 중국, 한국 등에서는 개별 한약재 등재를 계속 해서 추진하고 있다.
한약재 생산·품질부문 제안현황
2017년 홍콩에서 개최된 8차 총회까지 한약재 생산 및 품질 부분과 관련 제안 건은 Table 2와 같다. 아래 제안된 안건들 은 주로 한약재를 다루는 WG1과 WG2에서 논의되고 있고 나머지 안건들은 다른 Working Group에서 진행 중이다. 약용 작물 생산 및 품질 분야에서 중국은 한국과 경쟁이 심한 인삼 의 국제표준 선점을 위해 ‘인삼의 종자 및 종묘’ 안건을 가장 먼저 상정하여 등재를 완료하였다.(Kang Jae Yoon, 2013) 이 후 중국은 단삼, 삼칠삼, 몽골황기, 구기자, 산사 등의 종자·종 묘 및 한약재 품질에 관해서 다수 제안하여 일부는 표준화가 완료된 상태이다. 한국도 현재 길경과 황기 등을 제안하여 진 행 중에 있으며, 한국과 중국이 공동연구 및 공동제정을 추진 하여 등재한 한약재로는 오미자가 있다.(Table 2)
한약재 제조 및 품질관리 방법에 관한 국제 표준 활동에 있 어서는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 일본, 독일 등 보다 다양한 국 가에서 참여중이다. 제조공정과 관련해서는 한국, 일본, 중국 이 각각 2~3건으로 유사하며 검경 및 측정방법에 있어서는 중 국이 두드러진다. 한약재 품질 및 안정성에 관해서는 독일이 제안하였고 중국에서는 ‘개별 한약재 표준개발 우선순위 목록’ 을 제안3)하여 국제표준 추진 단계별 목표를 분명히 한바 있다. (Table 3)
Table 3에 언급된 표준안들은 대부분 한약재 제조공정이 나 검경 및 측정법 그리고 보존과 관련된 내용들이고 Table 2에 언급된 표준안들은 종자, 종묘에 관한 안건들과 한약재 품질에 관한 안건들인데, 이중에서 약용작물 생산농 가에 가장 영향을 미칠만한 안건은 종자·종묘 표준화보다 오히려 품질에 관한 안건들이다. 생산과정에 대한 직접적인 확인보다는 지나온 과정이 최종 생산물을 통해 검증받고 교 역도 이루어지게 되므로 시장에서 평가받는 것은 결국 생 산물의 품질이다. 한약재 품질의 식물적인 특성은 환경적인 영향을 많이 받게 되므로 상당부분 재배과정에서부터 형성 된다고 볼 수 있는데 어떤 국가의 식물체 특성을 표준에 더 많이 반영하느냐에 따라 각국 생산자의 유불리가 결정 될 수 있다. 가령 감초 등과 같이 환경에 따라 외관특성이 나 성분함량의 차이가 생길 수 있는 품목들의 경우, 중국 표준안이 국제표준으로 반영될 경우 중국산이 시장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가능성이 높은 것은 아니지만 국제표준이 국가표준에 영향을 주어 국내약전 등이 불리하 게 개정될 경우 해당 생산품이 시장에서 퇴출되는 일도 발 생할 수 있다. 중국 국가약품감독관리국에서 중국내 유통 한약재들을 조사해본 결과, 유효성분 함량이나 효능이 적정 기준에 미치지 못하거나 안전성에 문제가 있는 약재가 전 체 유통량의 1/3에 달한다는 보고도 있다.(Kang Jae Yoon, 2013; Sang Woo Shin, 2004) 한국의 경우 감초 등 일부 약재 외에 지표성분 기준치 미달로 인한 문제는 아직까지 드러나 있지 않지만 향후 국제표준 기준을 따르 게 된다면 국내농가 생산물이 기준치를 통과하지 못하는 문 제는 언제든 현실화 될 수 있다.
한약재 표준화 진행 사례와 분야별 대응방안 고찰 한약재 국제표준안건의 내용과 성격
한약재 국제표준화 진행 사례로서 한국 측에서 제안한 길경 (Platycodon grandiflorum Root) 작업초안(WD, Working Draft)을 살펴보면, 주요 내용으로 길경에 대한 소개, 안건의 범위, ISO문건 참조사항, 용어에 대한 정의 그리고 국제표준 기준치 요구사항들과 샘플링 방법, 테스트 방법 및 결과 제시 방법, 포장, 이송, 저장에 관한 규정, 포장표시 방법 등이 수록 되어 있다.(RDA, 2017) (Table 4) 서지정보에는 대한민국약전, 중국약전, 한약재관능검사지침, 한약재표준제조공정지침, 약용 작물 GAP 기준 등이 참고문헌으로 수록되어 있다. 한약재 품 질과 관련된 다른 국제표준 안건들도 대부분 먼저 발의된 유 사 문건들을 참고하다 보니 비슷한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국가표준이라 할 수 있는 각국의 약전에 포함된 내용보다 훨 씬 더 많은 내용들을 담고 있어서 상당수 품목들의 경우 국제 적으로 합의에 이를 만큼 충분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은 사 항들을 제안 안건에 담아야 하는 부담이 생긴다. 이렇게 제안 된 내용들은 각 표준화 단계별로 회원국들 간의 검토나 조율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특별히 국제적으로 민감하거나 부적절 한 제안이 아니라면 각국의 기준과 차이가 나거나 내용적인 오류, 형식적인 요건을 갖추었는지 등이 주요 검토 대상이 되 며 표준이 완성되기까지 관련 질의와 응답 및 문서수정 작업 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며 각 단계를 밟아 간다.
그런데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한약재 국제표준이 정확히 어떤 것을 지원하기 위한 사업인지는 다소 불분명한 측면이 있다. ISO TC249 신설은 애초에 중국이 중의학(TCM : Traditional Chinese Medicine) 세계표준 선점을 위해 주도한 것이나 한국 과 일본은 ‘동아시아 전통의학(TEAM : Traditional East Asia Medicine)’을 염두 해 두고 참여(Woong Yong Lee, 2012)하고 있어 아직 표준화 방향성에 대한 국제적인 합의에 이르렀다고 보기는 어렵다. 또한 표준화 대상이 식품인지 농 산물인지 의약품인지에 관한 것도 명확하게 정해진 것은 아니 다. 현재 WG1에서는 한약재가 아닌 약용작물의 재배법까지 도 일부 포함하여 다루고 있는데다 ‘의료용 한약재’만을 대상 으로 한다고 보기에는 국제적인 실효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 각국의 원료 의약품에 대한 국가표준은 나라마다 차이가 있 고 기준 적용도 엄격한데 국제적인 조율을 거쳐 채택된 국제 표준이 여러 국가의 법적인 규격을 동시에 충족한다는 것은 사실상 모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의 한약재 ISO 국제표 준은 기본적으로는 동아시아 전통의학의 공통 규격을 주로 반 영하겠지만 각국의 식품이나 의약품 규격 및 기원식물의 대표 적인 특성 등이 선택적 또는 종합적으로 반영된 다소 느슨한 형태의 규격 안으로 볼 수 있으며 안건발의 주체에 따라 결과 가 달라질 여지가 많다. 즉 동일한 품목의 국제표준을 발의한 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이 나라에서 하느냐 또는 저 나라에서 하느냐에 따라 다르고 의약품의 관점에서 보느냐 작물생산의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서도 차이가 있게 된다. 그 결과 향후 해당 품목의 국내외 생산에 미치는 영향도 다르게 된다. 물론 어떤 경우이건 국제적으로 널리 인정받을 수 있는 대표성을 갖출 수 있도록 관련 정보를 충실하게 조사하여 표준안을 만 드는 것은 회원국들의 지지 및 등재 가능성을 높이는데 도움 이 될 것이다.
한약재 표준화를 위한 주요 분야별 대상 품목 검토
한약재 국제표준화를 추진함에 있어서 한국, 일본 등이 느 끼는 가장 큰 어려움은 중국 측의 공세적인 표준화에 대한 대 응부담이다. 중국은 세계 한방시장에서 차지하는 규모나 생산 량뿐 만아니라 국가 정책상 의지, 발의건수, 대응인원 등 모든 면에 있어서 다른 국가들을 압도한다. 따라서 현재 중국과 같 이 개별 한약재 품목에 대한 표준을 경쟁적으로 등록하는 방 식은 품목이 늘어날수록 검토, 협상 및 사후관리의 범위가 늘 어나 대응이 어려우며 자칫 건수경쟁에 치우칠 우려가 있고 우리 측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만한 다른 사안들을 검토할 여력도 빼앗기게 된다. 그러므로 해당 분야별로 국제표준화의 시급성이 있는지, 시장에 미치는 부정적인 또는 불가역적인 영 향이 있는지 등을 사전에 검토하여 해당사안에 대하여 선별 대응할 필요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Table 5과 같이 표준화 분야별로 대상 한약재들을 정리해 보면, 종자·종묘 등 생산 분야나 생약의 기원이 달라 경쟁이 불필요한 약재들은 대응의 시급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판단된 다. 반면 대응이 시급하거나 중요한 분야는 크게 두 분야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첫째는 모양, 색, 유효성분 등 원산지별 자원의 고유 특성에 대한 차이가 시장에서 문제가 될 수 있는 도지약재들이다. 감초, 길경, 울금, 백지 등에 이에 해당될 수 있다. 도지약재(道地藥材, authentic herbal medicine)는 ‘가장 우수한 품질의 약재가 자랄 수 있는 지역에서 생산된 약재 (MFDS, https://www.mfds.go.kr)’를 말하는데 우수성에 대한 기준은 종종 명확하지 않거나 나라마다 다른 경우가 있음에도 국제표준으로 제정되면 이 표준들이 각국의 시장에서 우수성 의 표준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국제표준에 국내 자원의 특성을 되도록 많이 반영하는 것은 국내자원의 우수성 을 비생산적인 방식으로 확보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된다. 이를 위해서는 자원 특성평가가 선행되어야 하는데 반드시 국 내 생산과 연계해 검토하여야 향후 표준화된 약재 생산 가능 성을 높일 수 있다. 그러므로 해당 작물의 국내 생산이나 재 배 확대가 가능한지, 대표성을 가질 수 있는지, 수입산 등과 비교해 어떤 차이가 있는지 등 품질특성 비교는 물론 작물생 산 분야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를 통해 국제표준 안건에 반영 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만일 국내 약재의 특성 반영이나 달 성이 어려울 경우 국제표준 기준을 완화하는 것도 하나의 대 응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로 잔류농약, 곰팡이나 해충관리, 안전보존 등과 관 련된 안전성 및 품질관리 분야는 시장 및 소비자에 미치는 파 급효과가 크고 인프라 구축 등 국가 경쟁력과도 밀접한 관련 이 있으므로 비교적 중요하게 다룰 필요가 있다. 잔류 농약에 관해서는 최근 국내에서 잔류 허용기준치를 크게 강화한 농약 허용물질목록 관리제도(PLS, Positive List System)4)의 적용을 받는 약재들(MFDS, 2018)이 있으므로 이를 국제표준에 얼마 나 반영할 지에 관한 검토가 요구된다. 인삼, 복분자, 오미자, 구기자, 산약, 건강, 의이인 등과 같이 ‘식품의 기준 및 규격’ 에 따르도록 되어있는 일부 품목들(MFDS, 2017)이 이에 해당 되며 향후 적용품목 확대에 대비하여 과거 잔류농약이 문제되 었던 택사, 천궁, 산약, 작약 등의 품목들(Young Hee Choi et al., 2011)도 함께 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결명자, 울금, 원 지 및 천궁, 당귀, 방풍 등 곰팡이나 해충관리가 요구되는 약 재들(RDA, 2014)의 경우는 아직까지 국제적으로 친환경적인 관리를 할 만한 인프라가 부족하므로 포장, 이송, 보관 등과 관련된 현장 인프라 확충을 병행하여 국제표준화를 추진할 필 요성이 있다. 품질관리에서 건조공정 및 수분함량 등에 대한 기준이나 연구결과는 국내외적으로 모두 미흡한 수준이므로 국제표준화를 위해서 추가적인 보완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시사점
동아시아의 한방 의료체계는 학문적으로 유사한 뿌리를 가 지고 있지만 오랜 세월 독립적인 발전을 거듭해 왔다. 국가별 로 소요되는 약재들은 과거에도 종종 국제무역을 통해 조달된 바 있지만 많은 약재들이 현지에서 자체 생산하거나 다른 식 물로 대체되면서 독립적인 한방 의료체계를 형성하는데 일정 한 역할을 담당해 왔다. 그러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한약재 국제표준화 과정을 통해 ‘하나의 표준’을 정하게 되면 국가별 또는 지역별로 차이가 나는 특성들에 대한 선택과 도태가 불 가피할 수 있다. 상업적으로 볼 때 국제표준의 규격을 정한다 는 것은 지금까지 각국에서 달리 정해온 규격을 하나로 통일 시켜 단일시장으로의 편입이 가속화됨을 의미한다. 국제표준 은 역으로 국가별 자체 표준규격을 만들거나 개정하는 데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이고, 산업현장에서는 원료생산 과정 에 그리고 소비자에게는 품질보증의 증표로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따라서 국제표준화가 가능한지 가능하지 않은지는 향후 각국 생산물의 시장 성패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현재의 추세대로 중국 중심의 표준화가 심화 된다면, 이는 전통 한방 의료체계의 주도권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중국의 독과적인 안건 등록은 중국산 약재의 특성에 대한 반영도를 높이게 되므로 장기적으로는 시장에서 국산 약재의 가치를 떨 어뜨릴 수 있다. 국내 생산기반이 현재보다 더 약화될 경우 수급조절이나 국산 약재를 이용한 산업적 이용 등이 어려워지 게 되고, 약재의 안전성을 타국에 의존하게 되어 원재료 관리 에 대한 통제력도 떨어지게 된다. 따라서 그동안 한약재 국제 표준화는 공정서 등을 중심으로 한방 의학적 관점에서 추진되 어 국내 생산 문제는 큰 고려대상이 되지 못하였으나 지금부 터라도 국내산 약재의 특성이 표준에 반영되도록 노력할 필요 가 있다.
국제표준화에 대응함에 있어서도 효율적인 전략을 먼저 세 울 필요가 있다. 국내시장의 규모나 여력을 감안 했을 때 중 국과 같이 개별 한약재를 계속적으로 등록하는 표준화 전략은 국내산 약재의 특성을 방어하는데 한계가 있다. 또한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표준 안건들의 많은 내용들은 국내 약재의 특 성과 공통적인 부분들도 많아 이 부분까지 국내 산업에 부정 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도 어렵다. 따라서 공유하는 부분 에 대한 표준화 작업은 중국 측에 맡기고 국내 산업에 영향을 미칠 만한 사안이나 품목들을 선별하여 집중적으로 대응할 필 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향후 어떤 부분들이 국내 약용작 물 산업에 영향을 미칠지에 관해 정밀한 분석 작업이 선행되 어야 한다. 본 연구는 한약재 국제표준화에 대한 개략적인 소 개와 안건 사례에 대한 기초검토에 그쳐 국내생산 영향에 관 해서는 심도 있게 다루지는 못하였다. 후속 연구에서는 개별 한약재 및 사안별로 세부적인 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적 요
본고에서는 최근 중국을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는 한약재 ISO 국제표준화에 대한 대응을 위해 최신 등재 현황을 소개 하고 주요 추진상의 문제점과 대응방안들을 점검해 보았다. 주 요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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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표준화기구 전통의학 기술위원회(ISO TC249)는 2009 년 설립이후 31개의 국가가 참여하여 한약재 국제표준화를 추 진하고 있다. 한·중·일은 발의 문건은 90%이상을 차지하여 사 실상 아시아의 전통의학 분야를 두고 경쟁하고 있으며 간사국 인 중국은 약용작물의 종자·종묘에서부터 약재의 생산, 품질 그리고 침구, 의료기술 등에 이르기까지 전 한방분야에서 표 준화를 주도하고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약용작물 재배 및 한약재 품질 관련 안건만 약 50여건에 달해 향후 5년 내에 시장 거래량 상위품목들의 국제표준화 작업이 대부분 완료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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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진행되고 있는 안건들은 한약재의 품질이나 품질평 가에 관한 안건들이 대부분이다. 이 안건들이 국제표준으로 인 정되면 세계 한약재 유통시장에는 새로운 질서와 우열기준이 생기고 유통 한약재의 시장가치 평가에 반영되어 각국 한약재 점유율 변동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들 안건들은 직접적인 재배생산 표준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성분이나 성상 등 에 대한 표준을 담고 있으므로 대부분 재배생산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만일 중국 중심의 표준화가 계속해서 심화된다 면 장기적으로는 국내 생산농가에 부담을 줄 수도 있다. 그러 므로 한약재 국제표준화 대응은 향후 국내 생산물이 표준규격 을 달성할 수 있는 범위내로 기준을 유도하는 전략을 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국내 생산물의 특성을 파악하고 선반영 하 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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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약재 표준화 대응은 중국의 추진안건이 많으므로 분야 별 파급영향을 고려한 선별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종자·종묘 등 추가적인 제한 필요성이 낮은 분야보다는 향후 시장에서 한· 중 간 경쟁이 발생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 원산지 변조, 농약 잔류량·이산화황 과다검출 등의 이력이 있 는 약재들은 해당 표준을 강화하고 재배환경의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도지약재들의 경우 성상이나 지표성분 등에 대한 국 내약재의 특성을 최대한 반영할 필요성이 있다. 곰팡이나 해 충관리 등은 아직 각국의 관리규정이나 저온저장 시설 등 현 장 인프라 구축이 충분치 않은 점들도 고려되어야 한다. 아직 국제표준을 추진하기 위한 국내의 연구결과들이 충분치 않은 부분들이 많으므로 추가적인 연구와 지원이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