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론
커피 산업의 네트워크에는 다양한 행위자들이 존재한다. 주요 행위자들로는 대규모로 생두를 유통하는 국제 커피트레이더, 여러 국가에 걸쳐 소매망을 구축하고 있는 다국적 커피기업, 각 커피 생산국 내에서 활동하는 자국 내 수출 대기업과 이들의 현지 파트너인 생산자 조합, 그리고 기업과 시장의 결정에 순응하는 수동적 행위자로서 커피 생산자와 농장 노동자 그룹을 들 수 있다. 이외에도 각국의 커피협회, 중앙 및 지방정부, 중간상인, 금융기관 등이 네트워크의 복잡성을 더해준다. 이 행위자들은 국제커피협정(International Coffee Agreement, ICA)의 수출 할당제 폐지 이후, 가격 안정과 품질 제고라는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여러 층위에서 ‘공정무역 커피’와 ‘환경친화적 커피’로 대표되는 ‘지속가능 커피’의 확대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요 커피 생산 국가 10개국 중 8개국의 농민들이 절대빈곤 수준에 놓여 있는 상황이다(Cordes et al., 2021).
이러한 맥락에서 본 연구는 사회, 경제적 측면에서 소외되어 온 커피 생산자와 그들이 속한 커뮤니티에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하여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인도 난디재단(Naandi Foundation, 이하 난디재단)이 추진하는 Araku 지역 의 커피 프로젝트에 관한 사례연구를 통하여 커피 생산자와 이들이 속한 조합이 외부의 지원을 받아 어떠한 방식으로 지속 가능한 농업을 실천하였고, 그 결과 질적, 양적으로 성장한 커피 사업을 통해 ‘지역발전을 통한 세계화’ 전략을 성공적으로 추진하였음을 분석하고자 한다.
Araku 지역에 정착하고 있는 원주민인 아디바시(Adivasi) 족은 커피 생산량을 증대시켜 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노력해 왔다. 특히 이들은 경제적 수익 향상을 위하여 주로 숲 속 그늘나무(Shade Tree) 아래에서 커피를 재배하는 혼농임업에 집중하였다. 이를 위해 전통 화전 방식인 ‘Podu’ 경작에서 벗어나 새로운 커피나무를 꾸준히 식재하였으며, 후추, 망고, 구아바 등 간작물의 재배를 확대했다. 그러나 기존의 ‘Podu’ 경작으로 인하여 산림 토양의 침식과 황폐화가 발생하였고 땔감확보를 위한 산림파괴가 만연했기에 지역의 토양은 물리적, 화학적으로 침식되었고, 그 결과 커피의 품질은 하락하고 병충해로 인한 손해가 늘어났다.
이러한 상황에서 1998년 설립된 자선단체인 난디재단은 2000년부터 Araku 지역으로 들어가 원주민들의 소득, 건강, 성 불평등, 교육 문제 등 여러 사회문제 해결에 힘써왔다. 그러던 중 지역 농민들로부터 주요 현금 작물인 커피의 품질과 생산량 증가에 대한 지원을 요청받았고, 마침내 2003년 타타(TATA)그룹으로부터 보조금을 받아 커피 소농들을 돕는 활동인 Araku 커피 프로젝트에 착수하였다. 이후 유럽의 Livelihoods Carbon Fund(LCF)의 투자와 마힌드라(Mahindra) 그룹의 지원을 끌어내며 프로젝트를 성장시켰으며, 2010년에는 국제 커피 바이어들을 초청해서 커피를 판매하는 행사인 ‘Gems of Araku(이하 GOA)’를 시작하였다.
커피생두 시장은 ICA 체제 이후 소수의 국제 커피 트레이더들이 산지에 직접생산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전 세계 소비지에 본인들이 직접 생산한 커피를 독과점적으로 공급하는 형태로 발전되었다. 따라서 중소규모의 생두 회사나, 산지의 소규모 농민과 이들이 속한 중소규모의 조합은 해외시장을 개척하는 데 있어서 제약에 직면하였다. 그러나 난디재단의 Araku 커피 프로젝트의 경우, 재단이 프로젝트의 총괄 책임을 맡아 유럽의 탄소펀드 및 국내 여러 자선단체로부터 대형 투자금과 보조금을 받고 원주민의 커피 농사를 도와줌으로써 ‘세계화를 통한 지역발전’이 아닌 ‘지역발전을 통한 세계화’ 전략을 추진하였다.
본 연구는 인도 Araku 지역에서 사회, 경제적으로 소외된 커피 생산자와 그들의 커뮤니티가 어떠한 방식으로 난디재단과 협업하여 지속가능한 재생 농업을 실천하였고, 그 결과 이 지역의 낙후된 커피산업이 어떻게 세계화되었는지를 분석하고자 한다. 이러한 분석을 전개하는데 있어서 본 연구는 난디 재단 외 다양한 행위자들이 복수의 층위에서 맺고 있는 네트워킹의 양상을 보여줄 뿐 아니라 행위자들의 사회, 경제적 변화에 대한 분석을 가능케 하는 문화정치경제적(Cultural Political Economy, 이하 CPE) 세계생산네트워크론(Global Production Networks, 이하 GPN)의 시각을 활용하고자 한다. 따라서 본 연구는 소규모 커피 생산자들이 지속가능성의 가치에 입각하여 자신들의 낙후된 지역을 발전시키는데 방점을 둔 프로젝트를 통해 최종적으로 자신들의 커피를 세계화한 과정을 GPN상 다양한 행위자들의 관계를 통해 분석할 것이며, 이를 통해 기타 커피 산지의 소규모 커피 생산자들이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데 유의미한 함의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선행연구 및 이론적 논의
선행연구
1989년 이전 ICA 체제 하에서의 커피 산업은 커피의 생산과 소비가 적절히 통제되어 가격이 안정화된 특징을 보였다. 그러나 ICA 체제 붕괴 이후의 커피 산업은 자유화의 시기를 거친 뒤 점차 구매자가 주도하는 시장으로 바뀌게 되었고, 마침내 소비자들의 취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스페셜티 커피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Ponte. (2002)는 글로벌상품사슬(Global Commodity Chain, GCC) 분석틀을 가지고 ICA 체제 이후 시기의 커피 생산국과 소비국의 불균형적인 이익분배 상황을 ‘라떼혁명(Latte Revolution)’이라는 개념을 통해 설명한다. 라떼혁명은 주요 커피 소비국가들의 소비자들이 커피 품종, 생산지, 추출 및 분쇄 방법, 향미, 포장은 물론 사회적 의미의 콘텐츠와 까페의 분위기 등의 다양한 선택지를 가지고서 본인이 선호하는 바를 선택하고 이를 위한 비용을 지불하는 상황을 칭한다. 그러나 이러한 소비지의 상황과는 반대로 커피 생산자들은 낮은 커피 가격으로 인하여 생계 수단을 상실하고 있다(Ponte, 2002). 유사한 맥락에서 Daviron et al. (2005)은 ‘커피 파라독스’(Coffee Paradox)라는 개념을 이용하여 소비시장에서는 커피산업이 성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산국가의 커피 생산자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상황을 설명한다. 커피는 재료품질속성(material quality attribute) 에 따라 가격이 정해지는 상품으로 이 품질속성을 농가 수준에서 평가하는 것이 어렵기에 농부들에게는 커피의 품질을 고려하지 않은 낮은 가격이 지급된다. 반면 소비지에서는 커피 가치사슬에서 영향력이 있는 대형 로스터나 다국적 기업들이 마케팅 파워와 자금력을 활용하여 커피 소비자의 다양한 취향에 부합하는 여러 부가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부가가치를 확보하며 전체 커피시장을 좌우하고 부의 편중 현상을 강화시키고 있다. 따라서 Daviron et al. (2005)은 이러한 커피 파라독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커피 산지의 행위자들이 지속가능인증 제도와 같은 상징적이며 소비자 취향에 맞는 부가서비스를 직접 제공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생산국과 소비국의 불균형문제는 글로벌가치사슬(Global Value Chain, GVC)분석을 이용해 단순히 국가차원의 분석을 넘어 지역과 기업 차원의 분석에 초점을 두게 되었으며, 이와 관련된 연구는 다수 존재한다. Lee et al. (2016)은 베트남 주요 커피 산지인 닥락성에서 ‘일반 커피 생산의 착취적 가치사슬에서 인증 커피 생산에 따른 공유가치사슬로 전환’ 되는 과정을 보여주며, 가치사슬과 공유가치창출(CSV)의 개념을 이용해 다국적 기업이 주도하는 불균형적인 이윤 분배구조를 분석하였다. Ji et al. (2017)은 베트남의 지속가능인증 제도 도입과 관련해 가치사슬에서 중요 행위자인 국영기업 비나카페(Vinacafe) 사례를 분석하면서 지역의 커피 생산자들이 지속가능제도의 도입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경제적 혜택을 받지 못함을 지적한다.
본 연구의 연구대상인 인도와 Araku 지역에 대한 연구도 다수 존재하는데, Babu et al. (2019)은 인도 내 커피 가치 사슬에 걸친 비용과 수익의 분배를 연구하면서 커피 생산자들의 소득을 높이기 위한 전략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이어 Babu et al. (2022)은 다시 한번 인도의 가장 큰 아라비카 커피 산지인 Karnataka 주의 가치사슬 분석을 통해 가치사슬상 주요 행위자들의 마진을 계산하면서 업스트림(Upsteam)에 있는 농부보다 다운스트림(Downstream)에 있는 중간가공업자(Curer)와 로스터(Roaster)의 마진이 높음을 지적하며 농부들의 소득을 올리기 위한 가치사슬 업그레이드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상의 연구들은 공통적으로 커피 생산자와 그 외 가치사슬상 행위자들 간의 계층 관계와 불균형적인 소득 분배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이들 분석은 커피시장의 구조를 선형적인 사슬구조로만 이해하며 다양한 행위자들과 제도 등이 다각적으로 시장 전체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또한 불균형한 소득 분배 등 시장의 실패요인을 설명하고 있지만 해결책은 구체적이지 않다. 이에 커피 시장의 구조를 다각적인 네트워크 구조로 분석하는 GPN를 이용한 커피 시장 분석이 필요하며, 구체적으로 농민의 소득과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성과가 있는 사례분석을 통해 커피 생산자와 네트워크상 다층의 행위자들 간의 소득 분배 문제를 해결할 연구가 필요하다.
문화정치경제(CPE)의 시각에 입각한 세계생산네트워크론(GPN)
세계화 현상이 급속히 확대되면서 소위 멘체스터 학파에 속하는 경제지리학 교수들은 다층적 영역에서 활동하는 경제적 행위자들이 맺는 관계의 양상에 따라 지역발전 및 국가 성장의 결과가 달라진다고 주장하며, 2000년대 초반 GPN 분석틀을 제시하였다(Dicken et al., 2001;Coe et al., 2004;Coe et al., 2008). 특히 이들은 글로벌상품사슬(Global Commodity Chain, GCC)과 글로벌가치사슬(Global Value Chain, GVC)의 ‘사슬’ 개념은 수직적, 선형적(linear) 관계망으로 분석되지 않는 복잡하며 다양한 연결망을 분석할 수 없다고 비판하였다. 특정 상품의 생산과정에 간여하는 요소들인 원재료와 중간재의 흐름, 디자인, 금융과 마케팅, 유통작업 등은 수평, 수직, 교차, 대각, 수렴, 발산 등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Henderson et al., 2002). 그러나 GPN은 이러한 연결망이 초국가적 차원, 국가적 차원, 지역적 차원이라는 다차원적 영역에서 복잡하게 맺어지는 현상 분석에 유용하다.
GPN의 이론적 구조로 먼저 세 가지 범주(categories)를 볼 수 있다. 첫째, 가치(value)는 다양한 형태의 이익을 의미한다. GPN 연구를 진행한 대다수의 학자들은 기업중심적 시각에 입각하여 가치 창출의 주체를 기업으로 상정하였다. 따라서 GPN은 지역발전을 위해서는 창출된 가치가 지역 밖으로 유출되지 않고 지역 내에서 포획(capture) 및 강화(enhancement) 되어야 함을 주장한다. 둘째, 권력(power)의 경우, 먼저 경제적 행위자들을 조직화함으로써 지역발전의 핵심 행위자가 되는 글로벌 선도기업(lead firm)이 권력 보유의 주체가 될 수 있다. 만일 선도기업이 개방적이고 수평적인 권력 관계를 추구하면서 지역 내 다른 업체들을 비롯한 지역 내 경제적 행위자들과 높은 상호의존관계를 형성한다면 창출된 가치의 지역 내 포획과 강화 가능성은 커질 것이다. 그 외,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형성한 제도도 권력을 보유, 행사할 수 있다. 특정 지역에서 생산된 가치의 외부 유출을 막는 제도적 규제가 존재한다면, 지역 내에서 가치의 포획과 강화 과정은 보다 순조롭게 전개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착근성(embeddeness)은 일련의 생산과정에 관여하는 행위자들이 지역 내 뿌리내린 상태를 의미한다. 가치 창출과 강화의 중심이 되는 기업 및 관련 업체들, 지방정부를 비롯한 공적 기관 등이 지역의 내생적인 인적, 물적 자산(regional asset)과 효과적으로 결합 한다면 착근성의 정도는 높아질 것이다.
이에 더하여 2010년대 중반 논의되기 시작한 GPN 2.0에서는 GPN의 발생과 변형의 원인으로 비용/역량비, 시장개발, 금융규율을 논한다. GPN 1.0에서는 GPN의 개념을 잘 설명하고 있지만 GPN 생성과 재구성에 대한 이론화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러나 GPN 2.0에서는 장기간에 걸친 비용 절감과 회사의 역량 강화가 GPN의 요인이라는 비용/역량비의 개념을 소개하였다. 또한 네트워크를 통해 만들어진 제품과 서비스를 새로운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으로 판매하는 시장개발과 회사의 주주에게 더 많은 이익을 제공해야 하는 금융규율이 또 다른 GPN의 발생요인이라 설명한다(Coe et al., 2019).
또한 GPN 2.0에서는 조직전략으로 내부조직화(Intra-firm Coordination), 통제적 관계(Inter-firm Control), 동반자적 제휴(Inter-firm Partnership), 외부교섭(Extra-firm Bargaining)을 규정한다. 내부조직화는 강한 시장의 요구사항이나 높은 위험이 존재할 때, 국내 확장, 해외 직접투자, M&A 등을 통해 네트워크의 일부를 내재화(internalization)하는 전략을 말하며, 통제적 관계란 강한 비용/역량비나 금융규제 등의 압박으로 외주생산을 하거나 원료의 공급망을 통합하는 전략을 말한다(Coe et al., 2019). 이에 반해 동반자적 제휴란 위험한 시장환경에서 참가자가 상호보완(complementarity)의 관계를 유지하는 전략을 말하며, 외부교섭은 가치를 창출하고 확보하기 위하여 비기업 행위자들과 이루어지는 관계적 활동 및 기업 활동에 영향을 주는 다양한 기관과 제도(Lee, 2016)를 말한다.
한편 시간이 흐름에 따라 관련 연구들이 축적되면서 여타의 이론적 논의들과 마찬가지로 GPN 역시 이론의 수정 및 보완이 필요하다는 문제 제기에 직면하였다. 특히 기존의 기업중심적 GPN은 기업이 전략적으로 특정 지역의 자산을 필요로 하는 것이 지역발전에 중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에(Yeung, 2009) 지역 내 노동자들을 비롯한 주민들을 자율성과 자발성을 제약받는 수동적 존재로 간주한다는 오해를 낳았다. 더 나아가 기업중심적 시각에서는 기업의 가치가 지역 내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지지 않고, 반대로 사회경제적 내지 환경적으로 부정적 영향을 야기할 수 있음을 간과하였다.
이상의 지적을 받아들여 Coe et al. (2008)은 문화정치경제 (CPE)의 시각이 GPN에 반영되어야 함을 주장하였다. 구체적으로 CPE의 시각에 입각한 GPN은 권력을 가진 가장 주된 행위자로서 기업만을 상정하는 것에 대하여 비판적이다. 대신 권력을 가지고 있는, 혹은 향후 가질 가능성이 있는 또 다른 행위자에 주목하는데, 노동계층이 대표적이다. 개별 노동자 혹은 그들의 조직화된 단체인 조합은 강력한 자본과 인력을 지닌 기업에 비하여 권력을 보유하기에 불리한 위치에 놓여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보면, 노동자 들은 지역발전과 삶의 질 향상을 가장 강하게 열망하는 주체이기에 기업과의 관계에 있어서 의도적이면서도 적극적 행위 자가 될 수 있다.
따라서 CPE의 시각에 입각하여 GPN을 분석할 때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사실은 특정 산업에서 GPN의 형성과 전개로 인하여 노동의 측면에서 발생하는 변화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Coe et al. (2004)이 논하였듯이 지역의 잠재력이 실현되기 위하여 노동자들과 이들의 조합 등 지역 행위 자들이 네트워크의 가입원(enroller)이 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본 연구도 인도 난디재단의 Araku 커피 프로젝트를 분석함에 있어서 재단, 프로젝트 자금제공 주체인 탄소펀드, 국제커피 바이어, 중간상인 외에도 그동안 소외되어 온 산지 소농들과 그들의 조합이 GPN에 포섭되었음을 보여줄 것이다.
사례분석을 위하여 본 연구자는 2022-2024년 사이 세 차례에 걸쳐 난디재단의 연례행사인 ‘GOA’에 참가하여 프로젝트의 운영을 관찰하고 관련 자료를 수집하였다. 자료에는 2024년 ‘GOA’ 행사에서 연설한 난디재단 이사장과 지역 조합장의 연설문도 포함되었다. 취합된 각종 자료들과 문헌자료는 질적 자료분석 프로그램인 Atlas.ti를 거쳐 분석하였다. Atlas.ti는 텍스트, 비디오 등 여러 가지 형태의 데이터를 정성적으로 분석해 데이터에 숨겨진 함의를 찾아 이를 추출, 비교, 재조립하도록 도움을 주는 소프트웨어이다. Atlas.ti를 이용한 데이터 분석을 통하여 Araku 커피 프로젝트 및 이 프로젝트와 관련된 행위자들의 복잡한 상호작용이 갖는 양상과 특징, 이 프로젝트가 사회, 경제적 지속가능성의 측면에서 갖는 의미, 더 나아가 이 안에 내포된 지역발전과 세계화의 의미에 대한 이해를 시도하였다.
사례연구: 난디재단의 아라쿠(Araku) 커피 프로젝트
19세기 이후 세계 커피 시장의 행위자들 사이에서의 권력은 끊임없이 이동하여 왔다. 1962년 ICA 체제 성립 이전에는 브라질의 신흥 엘리트 집단이 가장 큰 권력을 행사하였고, ICA 체제 기간(1962-1989)에는 권력의 정점에 국제커피 기관(International Coffee Organization)의 참가국들이 있었다. 1989년 ICA 체제 붕괴 직후 자유화 시기(1989-2008)에는 국제 커피트레이더와 다국적기업이, 2008년 이후는 소위 ‘다양성과 재조합의 시대’로 불리는 시기로 품질과 생산 이력 등을 중시하는 중, 소형 아티잔(Artisan) 로스터들의 활동이 강화된 틈새시장이 확대되고 있다(Grabs et al., 2019). 커피 시장의 역동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일관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은 공급자인 소규모 커피 생산자가 항상 권력의 중심에서 벗어나 착취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ICA 체제의 붕괴 후 자유화 시기에 커피산업의 지속가능성과 이와 관련된 지속가 능발전 등의 개념이 소개, 적용되었지만 국제 커피트레이더는 물론 자국의 회사들조차 농민의 삶보다 회사의 수익 추구를 우선시하면서 소규모 커피 생산자들의 삶의 질은 평균 이하에 머물게 되었다. 아울러 이러한 사실은 다국적 기업은 물론 자국 내 커피 회사들조차 농부와 이들이 속한 지역발전 보다 자신들의 수익추구를 우선시하여 왔음을 의미한다.
본 연구가 분석하고자 하는 Araku 지역에 커피가 소개된 시기는 1898년 영국 식민지 시절이다. 독립 이후 지방정부와 인도 커피보드 원주민인 아디바시족의 경제적 자립을 위하여 오랫동안 커피농사를 장려하였다. 그러나 앞서 논하였듯이 Araku 지역의 커피 품질은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실제 이 지역의 아라비카 커피 생산량은 헥타르당 100-900kg로, 타 커피 산지의 생산량인 헥타르당 1,500kg (Hogg et al., 2013)에 비해 상당히 적은 편인데 이는 이 지역의 토력이 ‘Podu’ 방식과 같은 잘못된 관행으로 상당히 낮아졌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다국적 커피 트레이더들과 대규모 수출업체에 커피를 수급하는 중간상인들의 횡포로 커피 생산자들은 빈곤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이들은 커피를 통해 개인적인 삶의 질 향상과 지역 발전을 오랫동안 염원해 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선단체인 난디재단은 2000년부터 Araku 지역에 들어와 정치, 경제적으로 소외된 원주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사회운동을 전개하였으며, 그러던 중 2003년 Araku 지역 농부들로부터 주요 현금 작물인 커피의 품질과 생산량 증가에 대한 지원 요청을 받게 되었다. 이후 난디재단은 2003년 타타(TATA) 그룹으로부터 보조금 지원을 받는 것을 시작으로 유럽의 Livelihoods Carbon Fund(LCF)의 투자와 인도의 대기업인 마힌드라(Mahindra)의 지원을 순차적으로 끌어내며 Araku 커피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이 연구의 사례분석 대상인 난디재단의 Araku 커피 프로 젝트는 국제 커피트레이더나 다국적 커피 기업이 주관하거나 관련된 행사가 아니다. 그러나 “세계화 경제와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 분석을 다양한 행위자의 위치에서 시작할 수 있다”(Lee, 2016)는 연구에서 볼 수 있듯이, GPN의 렌즈를 통해 사회, 지리적으로 소외된 Araku 지역 소농들이 주축이 된 지역발전이 세계화의 동인이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난디 재단이 주관하는 Araku 커피 프로젝트는 ‘토착적(지역적) 착근성’(territorial embeddedness)을 우선시하는 프로젝트로서, 기업이 중심이 되는 일반적인 세계화 과정에서 소외되기 쉬운 소규모 커피 생산자와 그들이 속한 지역의 발전을 프로젝트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난디재단은 2007년 Araku 지역에서 커피 생산자 협동조합인 Small and Marginal Tribal Farmers Mutually Aided Cooperative Society(SAMTFMACS)을 설립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였으며, 설립 이후에는 LCF의 투자를 받아 새로운 커피나무와 간작물을 식재하고 조합원들에게 자체 유기농 교육프로그램인 ‘19 by 91’을 제공하여 토력을 회복하면서 커피 품질을 향상을 도왔다. 또, 2010년부터는 ‘GOA’ 행사를 개최하여 Araku 지역 커피가 세계화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난디재단의 Araku 커피 프로젝트는 다음과 같은 행위자들 사이에서의 전략적인 네트워킹을 통하여 지역발전을 우선시하는 세계화 전략을 수립하였다.
1. 세계생산네트워크의 행위자들
가. 난디재단(Naandi Foundation)
1998년 설립된 이래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사회사업을 전개하던 난디재단은 2000년을 전후하여 Araku 지역 아디바시 족의 다양한 사회복지적 현안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재단은 단편적이고 일시적인 사회운동만으로는 아디바시족 커뮤니티의 사회, 경제적 발전이 어렵다는 인식하에, 마침 2003년 이들로부터 커피농사에 대한 조언을 요청받아 본격적으로 커피 프로젝트를 시작하였다. 재단은 이곳 원주민들이 재배한 커피를 통하여 지역사회를 재건하고 사회복지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는데, 이를 위해서는 커피 품질을 제고하여 높은 가격에 커피를 판매할 수 있어야 했다. 따라서 재단은 시간이 소요되더라도 지역에 착근해 지역 자산인 토지의 생태환경을 개선하고 지속적인 유기농법 교육을 통해 노동력의 질과 커피품질을 제고하였다. 이를 위하여 대규모 프로젝트 진행을 위한 기금을 마련하고 커피 농사 전문가, 특히 유기농 커피 재배 전문가를 섭외하였다. 반면에 이 과정에서 재단은 생산된 커피를 판매할 수 있는 다국적 커피 트레이더나 대규모 수출회사를 참여시키지 않는 대신 스스로 커피 프로젝트의 기획자 겸 운영 주체이자 수출업자의 역할을 겸하였다. 2010년에는 국제 커피 판매 플랫폼이자 지역 커피축제인 ‘GOA’ 행사를 런칭 하였으며, 이 행사는 2024년에 15주기를 맞았다. 이 외에도 재단은 ‘Araku’라는 브랜드 마케팅을 통해 2019년에는 프랑스 Paris에 카페를 열어 세계화의 발판을 마련하였고, 현재 인도 내 Bengaluru와 Mumbai에도 카페를 열어 인도 스페셜티 커피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나. 산지 소농: 아디바시(Adivasi) 원주민
인도 커피보드(Indian Coffee Board)의 자료에 의하면 인도는 2022년 기준 6번째로 큰 커피 생산 및 수출국이며 이며, 전 세계 커피 수출량의 약 3.89%를 차지한다. 인도의 커피생산은 2022/23년 기준 주생산지인 남부지역의 Karnataka 주, Kerala주, Tamil Nadu주에서 각각 70.5%, 20.6%, 7.4%가 이루어졌다. 반면에 이번 연구대상 지역인 Araku지역은 전통적인 원주민인 아디바시족이 다수 정착하고 있는 Andha Pradesh주의 북동쪽에 위치한 산악지역으로, Araku 지역이 속한 Andha Pradesh주의 커피 생산은 인도 총생산의 3.48%에 불과하다(Database on Coffee, 2023). 그러나 인도정부는 법률로써 Araku지역을 ‘원주민을 위한 지정지역(Scheduled Area)’으로 정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이 마을의 원주민인 아디바시족은 작지만 자신들의 커피 재배지(Plot)를 보유할 수 있었다. 이 지역은 Andha Pradesh 주로의 편입 문제를 둘러싸고 중앙정부와 갈등을 빚었을 뿐 아니라, 최근까지 반정부 게릴라 활동이 이어짐에 따라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 고립된 지역이었다. 그러나 지난 15년간 지속된 난디재단의 커피 프로젝트를 통해 지속적인 커피 품질향상을 이루었으며, ‘GOA’ 행사를 통해 국제시장에 커피를 공급하며 사회, 경제적으로 혜택을 받게 되었다. 이 과정을 통하여 산지 소농과 그들의 커뮤니티는 자연스럽게 GPN의 가입원이 되었다.
다. 협동조합(Small and Marginal Tribal Farmers Mutually Aided Cooperative Society: SAMTFMACS)
난디재단이 본격적으로 커피 프로젝트를 전개하기 이전에 원주민들은 협동조합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따라서 생산된 커피 대부분이 중간상인들을 통해 판매되었으며, 악명 높은 중간상인들과 직접 거래를 하면서 국제 커피트레이더와 대규모 수출업체의 착취의 대상이 되어 왔다. 그러나 난디재단은 원주민 커피 생산자들의 요청에 의해 커피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협동조합의 필요성을 강조하여 원주민을 설득해 조합 설립작업에 착수했고, 마침내 2007년 이 지역 커피 협동 조합인 SAMTFMACS이 설립되었다. 재단은 조합을 설립하는 과정에서 원주민과 대화를 통해 지역의 현황 파악에 나섰고 이들이 커피를 통해 수익을 확보함으로써 절대빈곤 상태에서 벗어나 사회적으로도 혜택 받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난디재단은 매년 수확에 앞서 이 협동조합 이사회와 회의를 열고 미리 커피 수매 가격을 정하는데, 일단 정해진 가격은 시장가격 하락 시에도 지급을 보증하며, ‘GOA’ 행사 등을 통해 높은 가격으로 판매할 경우 추가 수익을 생산자들과 나누고 있다.
협동조합과 난디재단과의 관계는 GPN이 권력을 가진 행 위자로 기업만을 상정하고 지역발전을 부수적인 보는 시각을 비판을 가한 CPE관점에서 중요한 시사점을 가진다. Hudson (2008)은 CPE의 시각을 통해 가치 창출 주체들 사이에서의 지식과 정보의 교류, 에너지의 흐름, 생물학적이거나 화학적 또는 물리적 영향 등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는데, 난디재단은 장기간의 프로젝트를 행함에 있어 협동조합과 조합원에게 재생가능 농업의 개념과 그 실천 방안을 꾸준히 교육하고, 그 결과 토양의 회복과 탄소격리 같은 생태학적 성과를 이루었으며, 궁극적으로 커피 품질을 제고하여 세계 커피 시장에 높은 가격으로 커피를 판매할 수 있었다.
라. Livelihoods Carbon Fund(LCF)
난디재단은 Araku라는 넓은 지역에 장기간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하여 대규모의 초기투자금이 필요했다. 이에 재단은 유럽의 유명 탄소펀드인 Livelihoods Carbon Fund(LCF) 의 투자자금을 유치하였다. LCF는 난디재단을 통해 3차에 걸쳐 약 50,000헥타르의 산림에 커피나무와 간작물을 식재할 수 있는 프로젝트 자금을 지원하였다. 이러한 구조를 통해 재단은 장기간 안정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할 자금력을 확보 하였고, 지역 농민들은 LCF의 투자금을 이용해 유기농법을 실전하면서 커피나무는 물론 다양한 간작물을 추가로 재배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토양과 생태에 생물 다양성이 향상되었으며 자연스럽게 커피 품질도 향상되어 커피를 통한 수익증가가 가능해졌다. 동시에 투자자인 Livelihoods도 탄소크레딧의 형태로 투자수익을 회수할 수 있었는데, 난디재단의 커피 프로젝트를 통해 격리된 탄소가 유럽 탄소거래소에서 거래되기 위해서는 United Nations Framework Convention on Climate Change(UNFCCC)의 인증이 필요했다. 이 인증을 위해 재단은 3년에 한 번씩 감사보고서를 UNFCCC에 제출해야 했고 이 보고서 작성을 위해서는 꾸준한 모니터링과 기록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데, 재단은 원주민을 교육시켜 이를 준비하였다. 이 준비과정에 참가한 원주민들은 커피 농사와는 별도의 경제적 이익을 얻게 된다. 그러나 현재 LCF의 자금을 운용해 얻게 되는 탄소크레딧은 LCF의 투자자들에게만 배분되고 있는 상황으로, 난디재단과 원주민들에게 탄소크레딧이 직접 배분되고 있지는 않다. 재단은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LCF와 협의하며 노력 중이다.
마. 젬스 오브 아라쿠(Gems of Araku: GOA)
이 행사는 Araku 지역의 커피 축제이자, 최상품의 Araku 커피를 국제 바이어들에게 판매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2023/24년 수확기에 난디재단의 커피 프로젝트를 통해 생산된 커피 플랏(plot)은 약 2,000개 정도이며, 국내/국제 심사를 통해 상위 20개만이 ‘GOA’에 출품되었다. 이 커피들은 최소 가격 $5.0/lb로 온라인 경매를 통해 판매되었고, 이 경매의 최고 낙찰가는 $12.26/lb이었다. 이 온라인 경매에서 거래되는 커피의 양은 전체 프로젝트를 통해 생산되는 커피 중 극히 일부이다. 그러나 생산자들은 상위권에 들어 우승자가 되는 과정을 직접 목격함으로써 품질 향상을 위한 동기부여를 얻을 수 있다. 그 결과 재단의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농민과 마을의 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으며, 외국에서 초청되는 바이어들도 꾸준히 늘고 있다.
바. 국제 커피 바이어
난디재단은 2010년 ‘GOA’를 시작하면서 유럽, 미국, 일본, 한국 등 각국의 유명 바이어(buyer)들을 Araku로 초대하여 국제적인 구매자 네트워크를 형성하였다. 재단이 초대하는 구매자들은 가격보다 커피의 가치를 중시하여 지속가능 커피에 대한 철학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재단은 이들에게 커피 품질관리 방법 및 커피 생산시설을 소개하고 커피 품질 평가 방법인 커핑(cupping)을 통해 선정된 최상의 커피 만을 옥션을 통해 판매했다. 2024년 현재까지 이런 방식이 유지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옥션은 초청된 국제 바이어들에 게만 오픈되는 실정이다. 국제 바이어들은 옥션 참가후 ‘GOA’의 상위 수상작뿐만 아니라, 난디재단의 감독하에 생산된 기타 대량(bulk)커피 또한 같이 구매할 수 있는데, 이런 기회를 통해 국제 바이어들은 자연 친화적이며 품질이 좋은 Araku 커피를 제3자와 경쟁하지 않고 대량으로 구매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지게 된다.
사. Coffee Board
커피보드는 ICA 체제 시절 인도 커피의 생산량을 할당받아 관리하고 커피 관련 제도와 교육도 총괄하던 준정부기관 이다. 현재는 규제보다는 인도 커피산업의 발전을 위하여 중앙커피연구소(The Central Coffee Reaserch Institution, CCRI) 를 운영하며 마케팅과 품질향상을 위한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커피보드는 인도 전역의 주요 커피 산지에 지역 사무소를 운영 중이며, Araku 지역에도 지역 사무실을 두고 있다. 이에 Araku 지역에서 난디재단의 커피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고 있는 기타 커피 생산자들은 이 기관을 통해 교육 등의 지원을 받고 있다. 그러나 화학비료나, 해충제 등을 사용해 생산량 증대에 초점이 맞추어진 커피보드의 지원과 교육은 환경을 고려한 재생가능 농업을 통해 지역발전을 추구하는 난디재단의 프로젝트와 차이가 있다.
한편 커피보드는 인도 내 커피 지역별로 GI(Geographical Indication) 제도를 마련해 지역에 따른 독특한 커피 향미와 지역성을 강조한 마케팅을 돕고 있는데, Araku 지역도 주요 커피 산지의 하나로 선정하여 ‘Araku GI’를 승인하였다. 해외는 물론 국내 구매자들 사이에서 커피보드의 Araku GI를 가진 커피와 난디재단의 Araku 커피에 대한 혼동이 발생하는데 이 둘은 확실히 구분되어야 할 것이다.
아. 중간상인
인도 커피의 전통적인 벨류체인(value chain)을 살펴보면 중간상인의 역할은 여타 커피 생산국의 역할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 역시 원주민이 생산한 커피를 수출 허가가 있는 수출회사나 정선(curing)을 전문으로 하는 중간 업체로 넘겨 주면서 마진을 남긴다. 현재 인도 커피보드에서 제공하는 ‘Exporters of Indian Coffee’에 기재된 커피 수출업체는 242 개에 달하는데, 타타커피와 같은 대기업은 자체 농장을 운영 하지만, 대다수의 수출 업자와 국제 커피트레이더들은 중간 상인을 통해 커피를 수집하고 있으며, 이에 인도 커피 유통에서 중간상인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Achoth (2005)와 Bhavya (2011)에 따르면 지나치게 많은 중간상인의 개입은 공급체인을 길게 만들어 생산과 구매 간의 투명성을 저하시키고 거래 가격이 낮춰 커피 생산자에게 피해를 입힌다. 이런 현상은 인도 커피의 공급채널에도 만연한 문제이며, Araku 지역의 커피 역시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난디재단은 Araku 커피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중간상인의 개입을 원천 차단하고 프로젝트에 참가한 모든 원주민 생산자들의 커피를 전량 수매하면서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했다. 난디재단은 이 과정에서 정확히 0점 조정이 된 전자저울을 이용하여 투명한 거래를 보장하였으며, 2008년 완공된 CPU(Coffee Processing Unit)를 통해 원주민 개개인이 해오던 펄핑(Pulping) 및 건조(drying)작업을 재단이 내부화하여 원주 민들의 업무부담을 크게 줄여 주었다.
2. 행위자들 간의 네트워킹의 양상
이상의 논의는 난디재단이 커피 기업이 아님에도 Araku 커피의 세계화 과정에서 수출을 담당하는 선도기업의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고 있으며, 원주민 커피 생산자들과 이들이 속한 협동조합 역시 GPN에 행위자로 편입해 성공적으로 커피를 공급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LCF가 자금조달의 전략적 파트너로서 전체 프로젝트를 위한 자금을 제공하였고, 재단은 ‘GOA’를 통해 저명한 해외 구매자들을 직접 Araku로 초청해 최종적으로 GPN를 구성하였다. 이 GPN속에서 지역에 착근하고 있는 원주민들과 그들의 커뮤니티는 자연스럽게 GPN의 가입원으로서 편입되었고, 그 결과 창출된 부가가치가 외부로 유출되지 않고 Araku 지역 내에서 포획되고 있다. 2024년 ‘GOA’에서 난디재단의 이사장은 “Araku 프로젝트에 참가하는 원주민 커피 생산자 중의 60%에 해당하는 약 42,000명이 100,000루피(Rupee)이상의 소득을 올리고 있는 Lakhpatis”라고 밝혔는데, 이는 GPN을 통해 창출된 경제적 가치가 Araku의 원주민에게 돌아가고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인도에서는 ‘Lakh’는 숫자 100,000을 ‘Pati’는 소유자를 의미하는데, 이 ‘Lakhpatis’라는 용어는 인도의 중상층을 가리킬 때 종종 사용된다. 또한 이사장은 2023년 기준 “1,400개의 마을에서 54,000가구가 난디재단의 커피 프로젝트에 참가했는데, 2025년 말까지 2,400개 마을에서 약 85,600가구가 동참할 것”으로 예상하였다. 이는 Araku 지역에 형성된 GPN가 원활히 작동하여 Araku 커피 프로젝트의 참가자가 매년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인도 커피 보드 자료(Database on Coffee, 2023)에 의하면 2022/23년 기준으로 난디 재단의 커피 프로젝트가 행해지고 있는 Andha Pradesh주에는 총 231,276의 농가가 커피를 재배하고 있으며, 난디재단 이사장의 예측처럼 2025년까지 85,600가구가 난디 재단의 커피 프로젝트에 편입된다면 전체 Andha Pradesh주 커피 농가의 약 37%가 난디 재단이 구축한 GPN의 혜택을 받게 된다.
이는 맨체스터 경제지리학자들이 제시한 ‘지역발전의 세계 화’(Globalizing Regional Development)의 개념에 부합하며, Coe et al. (2004)이 언급한 지역발전의 개념인 지역적으로 토착화된 관계적 네트워크-제도와 지역 내생적 자산 간의 상호작용-와 GPN 간의 상호작용에 의한 결과물로 보기에 충분하다(Lee, 2016). 더 나아가 GPN의 발생과 변형의 원인으로 비용/역량비, 시장개발, 금융규율을 논하는 GPN 2.0에 입각하여 행위자들의 활동과 이에 따른 GPN의 형성을 분석하면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난디재단은 프로젝트를 진행 하면서 지역 주민과 꾸준한 소통을 통해 커피 품질 제고를 위한 원주민의 역량을 강화하였으며, 토력 향상을 위한 유기 농법을 정착시켜 커피 농사에 필요한 비용을 크게 절감하여 비용/역량비를 개선하였다. 둘째, 비용/역량비 개선은 품질향 상으로 이어졌으며, 품질향상에 힘입어 Araku 커피 프로젝트는 매년 새로운 구매자와 수출량을 늘려가고 있다. 셋째, 금융기관이 아닌 탄소배출 저감에 관심이 있는 공익적인 성격을 가진 LCF의 투자를 받아 일반 기업과 달리 이윤추구가 아닌 공익을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었으며, 투자가의 안정적인 수익과 함께 Araku의 커피가 세계화되는 독특한 모델을 만들 수 있었다.
이와 같이 난디재단의 Araku 커피 프로젝트는 GPN의 발생과 변형의 세 가지 원인을 모두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GPN 발생의 동기 측면에서 특정 커피회사의 이익이 아닌 GPN의 핵심 행위자인 원주민 커피 생산자와 그들이 속한 커뮤니티의 이익을 제고하기 위해 비영리 단체인 난디재단이 네트워크 형성을 주도했다는 점에서 기업중심의 GNP와는 차별성이 있다.
난디재단의 GPN 조직 전략과 성과
난디재단은 GPN 2.0이 소개하는 여러 조직전략을 성공적으로 구사하고 있다. 재단은 전체 프로젝트에서 선도기업의 역할을 대신하며 내부조직화(Intra-firm coordination) 전략의 일환으로 CPU(Coffee Processing Unit)를 직접 운영하며 품질향상에 필수적인 ‘수확 후 처리과정(Post-Harvest Processing)’ 을 중앙화하고 있다. 2024년에는 원주민 커피 교육을 위한 학교 시설을 완공하고, 현재 외부용역에 맡기고 있는 정선 과정도 품질의 일관성 유지를 위해 내부 조직화할 예정이다. 또, 통제적 관계(Inter-firm Control)의 일환으로 각종 유기 비료를 무상 공급하는 마을단위 CU(Compost Unit)를 운영해 비료의 품질을 통제하면서 커피 농사에 필요한 비용을 최소화하고 있으며, 농민들에게 유기농 농사을 위한 교본인 ‘19 by 91’을 제공하여 원주민의 농사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이 외에도 지역 협동조합 및 다양한 인도의 자선단체들 과 교류를 통하여 동반자적 제휴(Inter-firm Partnership)를 맺고 있다.
특히 GPN의 조직전략 중 ‘외부교섭(Extra-firm Bargaining)’ 은 Araku 커피 세계화 프로젝트의 핵심 성공 요인으로 볼 수 있다. 외부교섭이란 가치를 창출하고 확보하기 위하여 비기업 행위자들과 이루어지는 관계적 활동 및 기업 활동에 영향을 주는 다양한 기관과 제도(Lee, 2016)들을 일컫는데, 난디 재단은 LCF 펀드를 통해 프로젝트에 필요한 막대한 투자금을 장기간에 걸쳐 확보했으며 펀드 투자자들에게는 투자의 대가로 금전이 아닌 탄소크레딧을 제공하는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탄소크레딧이란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를 토양에 격리하는 효과를 가져올 경우 그 감소량을 나타내는 증명서로서, 투자자들은 탄소크레딧을 통해 자신들의 기업 활동에서 배출한 이산화탄소를 상쇄시켜 탄소세를 절감하는 등 경제적 이윤을 얻을 수 있다. 또한 난디 재단은 외부 교섭 전략의 일환으로 지속가능성이라는 철학을 가지고 소규모 커피생산자 및 이들 조합과 소통하며 지역에 안정적으로 착근하여 지역 자산인 토지를 비롯한 생태환경을 개선하였다. 그 결과 토양환경이 크게 개선되어 많은 영양분을 별도의 비용 없이 공급할 수 있게 되었고 그 결과 커피 품질을 꾸준히 향상할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난디재단은 2010년부터 프로젝트를 통해 품질이 향상된 커피를 세계시장에 소개하고 공급할 목적으로’GOA’라는 행사를 개최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주요 커피 소비국가에 Araku 커피를 인도를 대표하는 스페셜티 브랜드로 인식시킬 수 있었다. 최종적으로 Araku 지역의 소외된 아디바시 원주민과 그 커뮤니티의 발전을 위해 시작된 난디재단의 Araku 커피 프로젝트는 이상과 같은 GPN 형성을 통해 지역발전은 물론 그 지역의 커피가 세계화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결론과 함의
현재 세계 커피 시장에서 큰 영향력을 지닌 국제 커피 트레이더와 다국적 기업들은 지속가능성의 화두를 경쟁적으로 던지고 있으며 그 결과 일부 지역과 일부 커피 생산자들은 혜택을 누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생산자와 소비자의 만성적인 소득 극단화 문제는 더욱 심화되어 기업 위주의 각종 사회적 계몽운동은 한계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이에 지속가능성의 견지에서 사회, 경제적으로 지역발전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사례를 찾아 그 요인을 분석하고 일반화하는 작업이 요구된다.
본 논문의 연구대상인 난디재단의 Araku 커피 프로젝트는 이러한 시대적 필요에 부합하는 사례이다. Araku 지역 커피 산업을 분석한 기존의 문헌들은 농민들의 투자금 대비 수익률(Geddam et al., 2022)을 보여주거나 원주민과의 소통의 중요성(Suresh, 2023)만을 강조하며 Araku 지역 커피산업의 성공 요인을 심층적으로 보여주지 못했다. 따라서 본 연구는 난디재단이 주도한 Araku 커피 프로젝트의 성공적인 세계화 과정을 GPN 관점에서 분석하고자 하였다.
“세계화 경제와 글로벌 생산네트워크 분석을 다양한 행위자의 위치에서 시작할 수 있다”(Lee, 2016)는 논의처럼, GPN의 렌즈를 통해 난디재단의 Araku 커피 프로젝트를 살펴보면 이윤의 극대화가 아닌 사회, 경제적으로 소외된 Araku 지역 아디바시 원주민을 위한 지역발전이 세계화의 동인이자 목표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하여 난디재단은 지속가능성이라는 사회 규범을 철학의 기반으로 삼고 농민을 계몽하고 격려하는 동시에 커피 생산자협동조합, 국제바이어 등 다양한 행위자들 간의 관계를 조율하고 장기간에 걸쳐 그들과 신뢰를 형성하였다. 더 나아가 난디재단은 GPN의 조직전략들을 현실화시키는 한편 장기간에 걸친 품질향상으로 Araku 지역 커피를 세계화하는 데 성공하였으며 최종적으로 사회, 경제적으로 소외 되었던 아디바시 원주민의 삶을 개선시켰다.
인도 내 다른 지역에서도 Araku의 성공사례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에 난디재단은 Araku 지역에서의 사회, 경제, 환경적 지속가능성 성과를 바탕으로 ‘Araku’와 ‘Economics’의 합성어인 ‘Arakunomics’라는 개념을 소개하였다. 2020년 미국의 록커펠러 재단(The Rockefeller Foundation)은 ‘Arakunomics’ 를 미래의 지속가능한 우수 농업모델로 선정하여 ‘Food Vision 2050’상을 수여하였다. 이 상의 수상을 계기로 난디재단은 이산화탄소 배출 저감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LCF와 함께 Araku 모델을 인도 내 다른 지역은 물론 다른 커피 생산국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앞으로 난디재단처럼 이윤 추구보다 지역의 발전과 구성원의 삶의 질 향상을 우선 순위로 삼는 기관과 단체가 유사한 프로젝트를 주도한다면 그 또한 성공 가능성이 클 것이다.
결론적으로 난디재단의 Araku 커피 프로젝트에 대한 사례 연구는 소외된 지역의 커피 산업이 세계화되는 과정을 통해 사회, 경제적으로 소외되었던 원주민의 삶의 질이 향상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본 연구의 가장 큰 성과는 커피 생산자들의 경제적인 소득의 증가보다 프로젝트를 통해 원주민들이 자신감을 회복하고, 지역발전의 주체가 되어 자신들의 커피를 세계화하는데 주축이 되고 있음을 확인했다는 사실이라 하겠다. 이러한 성과는 2024년 ‘GOA’에서 난디재단의 이사장이 밝힌 바와 같이, 매년 행사에 참가하는 마을과 가구 수가 증가하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이는 포터와 크래머가 주장한 “지역의 경제적 사회적 경쟁력 향상과 기업의 경쟁력 향상을 동시적으로 달성하는데 기여하는 정책 혹은 관행”을 의미하는 공유가치(shared value)를 실현한 한 예시로도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Heo, 2012).
적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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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커피 시장에서는 수 차례의 구조변화가 발생하여 권력의 중심이 끊임없이 변동하여 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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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생산지와 소비지의 소득 극단화는 만성적 문제로 자리 잡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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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여러 국제단체와 개별기업들이 다양한 ‘지속가능성 운동’을 전개하였으나 한계를 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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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사회적, 경제적, 환경적으로 소외되어 온 커피 생산자들과 그들이 속한 지역의 발전을 우선시하며 세계화에 성공한 사례를 찾아 그 요인을 분석하고 일반화하는 작업이 필요한 실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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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맥락에서 본 연구는 문화정치경제적 세계생산네트워크의 시각에 입각하여 ‘지역발전을 위한 세계화’ 전략을 추진한 인도 난디재단의 Araku 커피 프로젝트를 분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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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디재단은 지속가능성의 철학에 기초하여, Araku 지역 원주민들을 계몽하고 산지 소농, 협동조합, 유럽의 탄소펀드, 국제바이어 등 관련 행위자들과 관계를 조율하며 이들과 신뢰를 형성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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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과정에서 세계생산네트워크의 조직전략들도 실현되고, 그 일환으로 국제적인 커피 판매 플랫폼이자 지역 커피 축제인 젬스 오브 아라쿠(Gems of Araku)가 시작되고 지역 이름을 딴 브랜드 마케팅도 이루어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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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커피의 양적, 질적 성장이 이루어지면서 커피 수출이 확대되었고, 이런 수출의 증가는 원주민의 삶의 질이 경제적으로 개선되는 효과를 가져왔으며, 유기농 농법의 정착으로 환경적으로도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성과가 있었음.